Prologue
평생, 재미있게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돌아보면 전공을 고르기 훨씬 전부터 저는 오래된 책 앞에서 자주 멈추던 아이였습니다. 몇백 년 전 누군가 쓴 한 문장이 오늘의 제 마음을 정확히 짚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시간이 접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즐거움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되지 않았습니다.
고전은 어렵다고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빨리 읽히지 않고, 한 번에 다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느림 덕분에 고전은 한 사람 곁에 오래 머뭅니다. 열 살에 읽은 이야기를 서른에 다시 읽으면 다른 책이 되어 있습니다. 예순에 다시 펼치면 또 다른 책입니다. 책이 바뀐 게 아니라 제가 바뀐 것이겠지요. 고전은 그렇게 한 사람이 자라는 것을 조용히 비춰 줍니다.
저는 이 즐거움이 어느 한때의 공부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처음 만나는 깊은 이야기로, 바쁘게 사는 어른들에게는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로, 이미 많은 계절을 지나온 분들에게는 오래된 벗으로 곁에 있기를 바랐습니다. 공부여도 좋고, 그저 즐거움이어도 좋습니다. 다만 평생 이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집을 세 채 지었습니다.
오래된 책을 함께 읽는 평고재, 오래된 그림 앞에 함께 서 보는 평예재, 오래된 음악을 함께 듣는 평음재입니다.
이름 끝의 '재(哉)'는 감탄의 글자입니다. "평생, 재미있게!" 저희가 드리고 싶은 말은 결국 이 한마디입니다.
그리고 이 세 집을 한 지붕 아래 담는 이름을 하나 마음에 두었습니다. 평유재입니다.
'유(有)'는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즐거워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어 온 것들, 수백 년을 건너와 아직도 여기 있는 책과 그림과 음악을 평생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즐겁고, 오래된 것이 즐겁기를 바랍니다. 그 두 가지가 평유재라는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마음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건네고 싶습니다. 책 한 권을 빌려주듯, 좋은 곡을 함께 듣자고 권하듯이요.
크게 떠들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 한 문장, 한 점, 한 곡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이 쌓여 언젠가 당신의 일부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